하나님의 말씀/인물별 성경공부

요셉 - 네비게이토 인물별 성경공부

LoveGod 2024. 4. 25. 04:16

Person Studied : 요셉

 

Scriptures Used

Verses
(구절)
Key thought
(중심 사상)
창세기 30:22-25 아들을 낳지 못했던 라헬을 하나님께서 돌아보시고 레아가 여섯 째 아들인 스불론과 딸 디나를 낳은 후 처음으로 라헬이 요셉을 출산했다. 요셉은 '여호와께서 더하실 것이다'라는 뜻. 요셉이 태어난 해 야곱은 라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cf. 야곱이 130세에 애굽 즉 이집트로 들어갔고 요셉이 총리가 될 때 나이가 30세이며 7년간의 풍년 이후 2년의 흉년이 지났을 때 야곱이 이집트로 갔다 (창세기 45:11). 요셉이 총리가 된 후 바로 풍년 7년 기간이 시작되었으면 그 해에 요셉은 39세, 야곱은 130세이었다. (야곱은 147세에 죽었다.)

이렇게 계산해서 야곱의 나이에서 요셉의 나이를 빼면 130-39=91세. 야곱이 91세에 요셉을 낳은 것으로 추정된다. (단 풍년 기간이 요셉이 총리가 된 후 바로 직후에 일어났고 풍년 기간 이후 흉년이 바로 일어났다는 가정하에 그렇다.)
창세기 37:2 요셉은 17세에 야곱의 첩인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단, 납달리, 갓, 아셀)과 함께 양을 치면서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하였다.
창세기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로 아버지가 다른 아들보다 더 깊이 사랑하여 채색옷을 입혀 주었다. (또 사랑하던 라헬의 첫 아들이어서도 그랬을 것이다.) 
창세기 37:4 형들은 자신들보다 요셉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 요셉을 미워하고 요셉에게 언사가 불평했다. 
창세기 37:5-11 요셉이 가족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것을 상징하는 꿈을 형들과 아버지에게 말했을 때 형들은 요셉을 더욱 미워하고 시기하게 되었다. 
창세기 37:12-17 헤브론에서 약 80km나 떨어진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던 형들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아버지 이스라엘(야곱)은 요셉을 세겜으로 보낸다. 거기서 찾지 못하자 또 약 20km나 떨어진 도단에서 형들을 찾게 된다. 
창세기 37:18-24 요셉을 본 형들은 요셉을 죽이자고 모의하고 요셉의 채색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져 넣는다. 
창세기 37:25-28 유다의 권면으로 형들은 요셉을 죽이지 않고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은 이십 개에 팔아 넘긴다. 
창세기 37:32-34 형들은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며 거짓을 꾸며내고 아버지는 크게 슬퍼하며 운다. 
창세기 37:36 요셉은 바로의 시위 대장 (왕의 경호 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렸다. 
창세기 39:2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요셉은 형통한 자가 되었다. 
창세기 39:3 보디발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요셉을 형통케 하시는 것을 보았다. 
(요셉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
창세기 39:4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했다. 
창세기 39:5 보디발이 자신의 모든 소유를 요셉이 주관하게 한 때부터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하여 보디발의 집(밭과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다. 
창세기 39:6 요셉은 건장한 체격에 잘 생겼다. 
창세기 39:9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할 때 요셉은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으려 하여 거절했다. 
창세기 39:10 매일 유혹하고 청하는 보디발의 아내의 요구에 요셉은 듣지 않고 행하지 않았으며 함께 있지도 않았다. 
창세기 39:12 보디발의 아내가 집에 아무도 없자 그의 옷을 잡고 청할 때에 요셉은 자기 옷을 버리고 도망하였다. 
창세기 39:20 요셉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에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갇혔다. 
창세기 39:21-23 감옥에 갇히자 마자 요셉은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을 살았고 교정관에게 은혜를 입었다.  그는 옥중 죄수에 대한 모든 사무를 요셉의 손에 맡겼다. 교정관은 요셉을 완전히 신뢰하였고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여 형통케 하셨다. 
창세기 40:4 보디발은 요셉에게 감옥에 갇힌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수종하고 섬기게 했다. 
창세기 40:6-7 요셉은 두 관원장의 얼굴에 근심이 있는 것을 보고 알아차리는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도움을 주기 위해 물었다.  
창세기 40:8 요셉은 그들의 근심이 꿈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며 꿈을 말해달라고 했다. 
창세기 40:9-11
창세기 40:16-17
요셉의 확신 있는 말에 관원장들은 자신들의 꿈을 상세히 요셉에게 말했다. 
창세기 40:12-14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이 3일 뒤 관직이 회복될 것이라 해석해주고 자신을 건져주도록 부탁했다. 
창세기 40:18-19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은 3일 뒤 그가 처형되어 새들의 밥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창세기 40:20-23 두 관원장에게 요셉의 해석 그대로 일어났으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않고 앚어버림
창세기 41:10-14 바로의 꾼 꿈을 해석하는 자가 없자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이 생각났고 요셉이 왕 앞에 서게 됨
창세기 41:16 요셉은 바로 앞에서도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꿈을 해석하는 것이라고 밝힘
창세기 41:25-32 바로의 꾼 꿈을 해석해주고 이집트에 관한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하나님께서 정하셨다고 이야기해줌
창세기 41:33-36 요셉은 닥쳐올 이집트의 환란에 대비하여 명철한 사람을 뽑아 이집트를 다스리게 하고 풍년 기간 동안 소출의 1/5을 적치하는 여러 관리를 두고 각 성에 흉년을 대비한 양식을 쌓아 놓도록 해결책을 제시함
창세기 41:38-44 바로와 신하는 요셉의 말을 모두 좋게 여기고 바로는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로 세워 이집트 전국을 다스리게 했다. 
창세기 41:45 바로는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고 지어 주었다. '사브낫 바네아'는 'God speaks and He lives'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는 산다. Message 영어 성경 참조)라는 의미임. 또는 'A revealer of secrets' (비밀, 은밀한 것을 열어보이는 자)의 의미임. (라이프 성경 사전 참조)
창세기 41:45 바로는 요셉에게 '온'(콥틱어 발음, 그리스어로는 헬리오폴리스)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아내로 주었다. 
창세기 41:46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나이는 30세이었다.
17세 이후로 13년 간의 믿음의 시련과 연단이 있었다.
창세기 41:47-49 요셉은 7년 풍년 기간에 각 성에 곡물을 저장하게 했다.
창세기 41:50-52 요셉의 아들 므낫세('잊게 해주다'의 뜻, 자신의 모든 고난과 아버지 집에 있었던 일을 잊어버리게 하심)와 에브라임('두 배로 열매를 맺는', '열매 풍성한 땅'이라는 뜻)이 흉년이 들기 전에 태어 난다. 
창세기 41:55-57 요셉의 말대로 기근이 심하여 백성들이 부르짖었다. 바로는 요셉에게 가서 요셉이 이르는 대로 하라고 하고 이집트 뿐만 아니라 각국에서 양식을 사려고 이집트로 와서 요셉에게 나아 왔다. 
창세기 42:6-7 요셉이 총리로 양식을 팔 때 요셉의 10명의 형들이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들어와 요셉에게 나아옴
창세기 42:8-20 요셉은 형들을 알아차리고 그들이 정탐꾼이라고 내세우며 그들을 옥에 가둔다. 그리고 말째 아우를 데려와야 그들이 정탐꾼이 아니라고 인정해주겠다고 하며 한 명만 남기고 형들을 풀어준다.  
창세기 42:21-25 형들은 요셉에게 잘못한 일 때문에 그들이 벌을 받는다고 서로 이야기한다. 요셉 앞에서 요셉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요셉은 그 말을 듣고 다른 곳에 가서 운다. 시므온을 잡아두고 그들에게 양식과 그들이 가지고 온 돈도 그대로 자루에 넣어 떠나보낸다.  
창세기 43:16 형들이 두 번째로 요셉에게 왔을 때 베냐민을 데리고 왔고 요셉은 그들이 12시에 요셉과 점심을 같이하도록 자기 집으로 인도하라고 하였다. 
창세기 43:26 형들은 요셉이 집으로 들어오자 요셉에게 땅에 엎드리어 절한다. 
창세기 43:30 요셉은 베냐민을 보고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해 급히 울 곳을 찾아 안 방에 들어가 울고 온다. 
창세기 43:34 요셉은 형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고 그들은 즐거워하였다. 
창세기 44:1-3 요셉은 다시 형들의 자루에 음식과 돈을 다시 넣도록 하고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넣도록 청지게에게 명하고 그들을 아침에 돌려 보낸다.  
창세기 44:17 그 잔이 베냐민에게서 발견되었을 때 요셉은 베냐민만 남기고 형들은 돌아가라고 했다. 
창세기 44:33 유다는 자신이 베냐민 대신에 잡히겠다고 하고 베냐민을 풀어주도록 부탁한다.
창세기 45:1 요셉은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었다. 소리 질러 사람을 모두 물러가게 하고 형제들에게 자신을 알렸다. 
창세기 45:2 요셉은 방성대곡했다.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궁에 들릴 정도로(요셉이 너무 크게 울었으므로 그 소문이 금방 왕궁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크게 울었다. 
창세기 45:3 요셉은 자신을 요셉이라 밝히고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다. 
창세기 45:4-8 요셉의 믿음의 고백이다. 형들이 자신을 판 것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며 자신을 이집트로 보낸 자는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고 그들과 그들의 후손 (하나님의 자녀들의 후손)의 생명을 보존하시려고 자신을 당신들 앞에 보냈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바로의 아비를 삼고 온 집의 주를 삼아 이집트 온 땅의 치리자가 되게 했다고 한다.  
창세기 45:9-15 흉년이 아직 5년이나 남았으므로 아버지를 모시고 오도록 형들에게 말한다. 
창세기 45:16-20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그들의 아비와 가족들을 이집트로 데리고 오도록 명하며 이집트의 좋은 땅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창세기 45:21-23 요셉이 바로의 명대로 형들에게 양식과 옷, 또 아버지에게 보낼 나귀, 물품, 곡식, 양식을 실리고 형들을 돌려 보낸다. 
창세기 45:24 요셉은 형들에게 노중에서 다투지 말도록 명한다. (요셉의 지혜)
창세기 45:25-28 야곱은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믿기 힘들었으나 요셉이 보낸 물품을 보고 기운을 내어 요셉을 보러 가겠다고 한다. 
창세기 46:4 야곱은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로 가기 전 브엘세바에 가서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렸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집트로 내려가서 큰 민족을 이룰 것을 말씀하시며 요셉이 그 손으로 눈을 감길 것이라 약속해주셨다. 
창세기 46:29,30 요셉은 야곱과 재회한다.  
창세기 46:34 요셉은 가족들에게 목축업을 하는 자들이라고 바로에게 소개하도록 하고 고센 땅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창세기 47:1-2 요셉은 바로에게 자기 가족이 도착했음을 알리고 형들 중 5명을 택하여 바로 앞으로 데려감
창세기 47:6 바로는 요셉의 형들 중에 자신의 짐승을 주관하도록 했다. 
창세기 47:7 요셉은 야곱이 바로 앞에 서도록 했다. 
창세기 47:11,12 요셉의 가족들에게 이집트의 좋은 땅인 라암세스를 기업으로 주고 음식을 주었다. 
창세기 47:13-26 요셉은 이집트 사람들의 돈, 가축, 자신들의 몸, 토지를 다 사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종자를 주었다.  추수한 후 1/5은 바로에게 주고 4/5는 자신들의 필요를 따라 갖도록 하였다. 이집트 사람들은 요셉이 자신들을 살렸다고 하며 바로의 종이 되겠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집트의 토지법을 세웠다. 
창세기 47:29-31 야곱은 요셉을 불러 자신을 이집트가 아니라 조상의 무덤(아브라함, 이삭)에 장사하도록 맹세하게 한다
창세기 48:1 요셉은 야곱이 병들었다 함을 듣고 두 아들과 함께 야곱에게 간다. 
창세기 48:16 이스라엘(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하며 번성하도록 기도한다. 
창세기 48:17-20 요셉은 장자인 므낫세를 앞세우려고 하였으나 야곱은 우수를 에브라임에 얹고 에브라임을 더 앞세운다.
창세기 48:21-22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여 조상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 예언하며 요셉에게 형들보다 더 많은 땅을 주겠다고 말한다. 
창세기 49:22-26 야곱은 요셉에게 축복한다. 그는 샘 곁의 무성한 가지로 승리의 삶,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는 것, 하나님이 도우시고 태의 복을 주실 것 등을 예언하며 축복한다. 
창세기 50:1 야곱이 죽자 요셉은 야곱의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춤
창세기 50:5-6 요셉은 바로에게 가서 아버지를 가나안 땅에 가서 장사할 것을 요구한다. 
창세기 50:7-14 요셉은 어린 아이들을 제외하고 형들과 가족들, 바로의 신하와 이집의 장로들, 군대와 함께 가서 가나안 땅인 마므레 앞, 막벨라 굴에 아버지를 장사하였다. (아브라함, 사라, 이삭, 리브가, 레아가 묻힌 곳)
창세기 50:15-17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만난 지 17년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자신들의 악을 갚을 것을 두려워하여 아버지께서 자신들을 용서하라고 했다고 주장하자 요셉은 운다. 
창세기 50:18-21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엎드리자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선으로 바꾸셔서 만민을 구원하게 하려 하셨다며 그들을 위로하였다. 
창세기 50:22 요셉은 이집트에서 110세 까지 살았다. 
창세기 50:23 요셉은 에브라임의 자손 삼 대를 보았고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됨
창세기 50:24 요셉은 자신은 죽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여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함
창세기 50:25 자신의 해골을 이집트에서 메고 올라가겠다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킨다. 
창세기 50:26 요셉이 죽고 이집트에서 입관하였다. 
출애굽기 13:19 요셉이 죽은 지 약 360년 후에 모세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나온다. 요셉의 명대로 요셉의 해골을 취하여 이집트에서 메고 나갔다. 
여호수아 24:32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다.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 자손에게 산 땅이었다. 
역대상 5:1 장자의 명문이 요셉에게로 돌아갔었다. 두 분깃을 가짐 (에브라임, 므낫세)
역대상 5:2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았지만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었다. 
시편 105:17-22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요셉을 이스라엘 앞서 이집트로 보내셨다고 표현하고 있다. 요셉이 감옥에 갇히고 발이 착고에 몸이 쇠사슬에 매여 있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응할 때가지 그러한 시련의 기간이 있었고 그 말씀이 요셉을 단련하였다고 한다. 요셉이 총리가 되어 이집트를 다스렸음을 요약한다. 
에스겔 47:13 이스라엘의 십 이 지파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는데 요셉은 두 분깃(에브라임, 므낫세)을 받았다. (장자의 명분)
히브리서 11:21,22 히브리서 기자는 야곱이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한 것도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요셉이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의 떠날 것을 말하고 자기 해골을 메고 나가라고 한 것도 모두 믿음으로 했음을 밝힌다. 

 

Biographical Sketch (생애, 일대기 요약)

 
요셉은 Joseph, 혹은 Jehoseph이다. 'Jehovah has added', 즉 '여호와께서 더하셨다', '여호와께서 더하실 것이다.'라는 의미로 요셉 족속은 후에 에브라임, 므낫세 지파 등 그 숫자가 크게 더했음을 알 수 있다. 

 

요셉은 야곱(이스라엘)이 사랑하던 라헬의 첫 번째 아들로 성경을 근거로 추정컨대 야곱이 91세에 나은 아들이다.  노년에 얻은 아들이어서 야곱이 더욱 사랑하였다. 

 

요셉은 외모도 훌륭했고 신체도 건장하였다. 17세에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보고했고 그가 꾼 꿈 때문에 형들은 요셉을 더욱 시기하고 죽이기까지 하려고 하였다. 

 

형들의 미움과 시기로 요셉은 17세에 이집트에 노예로 팔렸다. 바로왕(파라오)의 시위대장(경호 대장)인 보디발의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 주셨다. 그러나 거기서 주인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는 과정에서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된다. 

 

감옥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해주셔서 형통하였다. 감옥에서 그는 바로왕의 술 맡은 관원과 빵 굽는 관원의 꿈을 해석해주고 그 꿈은 해석대로 되었다. 후일에 바로가 꿈으로 번뇌하던  때에 술 맡은 관원의 추천으로 요셉은 바로 앞에 서게 되고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하나님의 지혜로 해석해 주고 30세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 바로는 그를 사브낫 바네아(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혹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는 산다.)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다. 그는 총리가 된 후 흉년을 대비하여 곡식을 저장하였고 가나안에 살던 형들이 요셉 앞에 나타나 곡식을 구하였다. 요셉은 자신의 꿈대로 된 것을 보았다. 그리고 형들의 변화를 알아차린 요셉은 자신을 그들에게 알리고 가족들을 이집트로 데리고 오게 한다. 

 

야곱은 이집트로 들어온 이후 17년을 더 살았고 요셉의 아들들과 요셉에게 축복하였다. 장자의 명분을 받아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기업을 얻게 되었다. 
 
아내는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었다. 30세에 결혼하고 7년 내에, 즉 7년 흉년이 시작 되기 전에 두 아들이 태어났다. 

요셉은 놀라운 지혜로 이집트를 잘 다스리고 흉년을 대비해 주변 국가의 기근에서 그들을 구원했다. 결국 그 가족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손)들을 구원하고 약속의 자손을 보존하는 역할을 했다. 

 

요셉은 이집트의 토지법도 제정했다. 바로(파라오)왕은 모든 권한을 요셉에게 맡기고 그가 이집트를 치리하도록 했다. 

 

야곱이 임종 시에 요셉을 축복했다. 요셉은 자신의 해골을 명하여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자신을 가나안 땅에 묻도록 했다. 

 

 

Key Verse (핵심 구절)

 

시편 105: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Leading Lesson (주요 교훈)

 
요셉은 그리스도의 삶을 그의 삶에서 드러낸 구약의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고난의 연속의 삶이었다. 계속되는 모함과 시련의 기간이 있었다. 배신과 버림받음, 거절, 시기, 모함, 오해, 역경,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요셉은 믿음으로 반응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신 대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그는 이집트의 총리의 자리로서 만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쓰임 받았다. 

 

고난을 견디고 믿음으로 반응하며 말씀으로 연단된 리더쉽이다. 그는 진정한 리더이었다. 

 

그는 앙갚음을 하지 않았고 모든 현상을 믿음의 눈으로 보았다. 형들을 대하는 그의 행동과 태도와 말을 통해 그가 자신의 고난을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보인다. 

 

형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 온 생명을 구하게 하였다고 하였다. 

 

요셉은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그리스도를 닮은 좋은 본보기이다. 
 
 

Problems (문제점) 

 

Verses 
(구절)
Identifying Questions
(관련된 질문)
  요셉을 잘 이해하기 위해 가족 배경이 어떻게 되는가?  

17세에 야곱과 요셉이 헤어지고(창세기 37:2) 요셉이 39세에 만났다고 가정하면(창세기 41:46, 45:11) 야곱은 22년 만에 요셉을 보게 된다.

그 때 야곱의 나이가 130세이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거했다고 했다. (창세기 31:41)  

에서는 40세에 헷사람의 딸을 취하여 결혼을 했고(창세기 26:34) 이것이 이삭과 리브가에게 슬픔이 되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때는 이 이후(창세기 27:28)이었고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이므로 야곱이 집을 떠나 라반에게 간 때는 적어도 40세 이후이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봉사했다. 이 기간에 12 아들과 딸 디나를 낳게 된다. 

요셉을 낳은 해에 야곱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창세기 30:25)

그러므로 야곱이 라반의 집에 와서 첫 해에 결혼하고 바로 레아가 르우벤을 낳았다고 가정하면 르우벤과 요셉은 19-20살 정도 차이가 난다. 

이삭이 180세에 죽었다. (창세기 35:28) 야곱은 이삭이 60세에 낳은 아들이다. (창세기 25:26) 따라서 이삭이 죽을 때 야곱의 나이는 180-60세 하면 120세이다. 

즉 야곱이 이집트에 130세에 갔으므로 이집트로 가기 10년 전에 이삭은 죽게 된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때는 에서가 40세에 결혼한 이후(창세기 26:34)이고 이삭이 60세에 야곱을 낳고 40년이 지났으므로 적어도 이삭이 100세가 지난 이후이었다. 

야곱이 라반의 외삼촌에서 일한 기간이 20년이라고 했고 그 기간에 야곱의 열 한명의 아들이 태어났다. 베냐민은 라반과 함께 있던 밧단아람에서 돌아온 후 벧엘에서 에브랏으로 가는 길에 라헬이 출산했다. (창세기 35:16-20)

요셉은 큰 형인 르우벤과 20세 정도 차이가 나고 베냐민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온 후 얼마 안되어 태어났으면 베냐민은 요셉과 그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 

< 창세기 35:23-26절 >
레아의 아들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라헬의 아들들: 요셉, 베냐민
빌하(라헬의 여종)의 아들들: 단, 납달리
실바(레아의 여종)의 아들들: 갓, 아셀

요셉의 형들, 누나, 동생을 나이 순서대로 하면 

르우벤 - 시므온 - 레위 - 유다 - 단 - 납달리 - 갓 - 아셀 - 잇사갈 - 스불론 - 디나 - 요셉 - 베냐민

이러한 가족 배경이 있다. 

위의 배경은 창세기를 살펴보면서 스스로 정리해본 내용이다. 아래는 NIV Study Bible (Zondervan, 1995)의 앞 표지의 연대표에 나와 있는 연도와 대조하여 본다. 

연도는 학자들의 여러가지 해석 상으로 추정치이며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모두 기원 전 연도이다. 

2166 아브라함 출생

2091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감

2080 이스마엘 출생

2066 이삭 출생

2050 이삭을 번제로 드림

2006 야곱과 에서가 태어남

1991 아브라함이 죽음

1929 야곱이 하란으로 도주함 (이 연표에 따르면 야곱의 나이 77세)

1915 요셉의 출생 (야곱이 91세. 위에서 조사한 나의 계산과 동일하다.)

1898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감 (요셉이 17세, 야곱은 108세)

1886 이삭의 죽음 (이삭 나이 180세, 야곱 나이 120세, 나의 계산과 동일함)

1876 야곱과 가족이 이집트에 정착 (야곱이 130세, 요셉은 39세, 나의 계산과 동일함)

1859 야곱의 죽음 (야곱 나이 147세, 요셉의 나이 56세)

1805 요셉의 죽음 (요셉의 나이 110세)

1526 모세의 출생

위의 연표는 NIV Study Bible의 연대표를 참조해보았다. 

위의 연표와 스스로 조사한 성경의 흐름을 따라 살펴본 연도가 차이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야곱은 이집트에서 17년을 더 살았다. (창세기 47:18)


cf. 위의 연표에서 모세의 출생을 1526년으로 보는 이유는 이집트에서 430년 간 이스라엘이 머물러 있었다(출애굽기 12:40-41)고 했으므로 야곱 가족이 이집트로 들어온 1876년에서 이집트에 머문 기간인 430년을 빼면 1446년이 되고 

그 해에 모세의 나이가 80세이었으므로 

1446+80세는 1526년이 된다.
  형들은 어떻게 요셉을 죽이려고까지 했는가?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잠언 27:4). 잔인한 '분'과 큰 홍수 같은 '노'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시기'라고 하셨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의 특징 중 세번 째가 시기하지 않는 것이다. 

시기는 자기가 가장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이기적인 욕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인다. 

자기가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자기보다 다른 사람이 더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느낄 때 생기는 것으로 극히 자기 중심적인 사랑에서 나온다. 

내가 더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남이 더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느낄 때  

내가 더 잘 되어야 하는데 남이 더 잘 된다고 생각하고 느낄 때

인류의 첫번 째 살인은 바로 시기에서 비롯되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일 때, 자기의 제사는 열납되지 못하고 아우의 제사가 열납되었다고 생각함)

진정한 사랑은 남이 잘 되는 것을 정말로 원해야 한다. 

자기가 해를 받게 될 때에라도 남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이다. 

시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고린도전서 12:25-26, 히브리서 12:3 처럼 다른 사람의 영광을 나의 영광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는 마음이다. 

즐거워하는 자들고 함께 즐거워 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로마서 12:15)
창세기 39:3 하나님을 모르는 보디발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을까?


요셉은 분명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아버지인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며 씨름한 삶)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아갔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가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을 실천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범사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일을 할 때도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

빌립보서 2:15-16 처럼 흠이 없고 순전하여 이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삶을 살았다.  

즉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었다. 
창세기 40:4 시위 대장인 보디발은 요셉에게 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섬기게 하였을까? 

당시 임금의 술과 빵(주식)을 책임지는 총 책임자는 높은 위치였을 것이다. 느헤미야도 왕의 술 관원이었다. (느헤미야 1:11,12) 당시 고대 사회에서 왕의 술과 음식을 맡은 사람들은 주식과 관련된 사무뿐만 아니라 왕의 술이나 음식에 독이 들어가 왕을 모해하려는 시도도 차단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렇듯 왕 가까이에서 왕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섬기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높은 관리이었다. 

느헤미야가 후에 유대 총독으로 파견된 것을 보면 이 관직이 높은 위치임을 알 수 있다. 

보디발은 왕의 시위대장 즉 경호대장으로 높은 위치에 있었고 그의 집에 감옥이 있었다. 요셉은 그의 집에 갇혀 있었는데 요셉이 보디발의 노로 감옥에 갇힌 지 시간이 지났고 요셉이 감옥에서 하는 일을 교도관들을 통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감옥의 총 책임도 보디발이 지고 있었을 것이므로 교도관들이 요셉에게 모든 옥중 사무를 맡긴 것도 보디발의 허가 하에 이루어졌다고 보인다. 

요셉의 삶을 볼 때 요셉이 주인의 아내의 모함으로 그렇게 되었음을 보디발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볼 수 있고 높은 위치에 있던 두 관료를 충성스러운 요셉이 섬기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요셉에게 화를 내 요셉을 옥에 가두었지만 요셉도 보디발에게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음을 이야기는 했을 것이다. (보디발의 아내에 대한 언급을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셉은 감옥에서도 자신이 감옥게 갇힐 만큼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고 했다. 창세기 40:14,15) 
창세기 40:6-7 요셉은 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근심 빛이 있냐고 물었을까? 

요셉의 어떠함과 됨됨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통 다른 사람의 얼굴 빛을 보고 그 사람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데 그것을 해결해주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아니면 적극적으로 해결해주고자 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창세기 40:8 요셉이 두 관원장의 근심이 꿈에 있음을 들었을 때 왜 적극적이 되었을까? 

요셉은 꿈에 대해 몇 가지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어렸을 때 두 꿈을 꾸고 그것이 너무나 생생하여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말씀하신 것으로 받아들였었다. 

즉 꿈을 들은 사람은 다 이해하기 쉬울 정도의 꿈이었다. 야곱의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이었다. 

두 관원장은 자신들이 꿈을 꾸었는데 분명 미래의 일을 예고하는 듯한 꿈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어떠한 내용인지 몰라 매우 고민이 되는 상태이었다. 

그리고 해석할 사람을 찾기를 원했다. 요셉이 바로 그러한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인 줄 알았으면 근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셉에게 물어보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그들은 요셉이 이러한 능력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 

요셉 이후 약 1300년 뒤에 살았던 다니엘(BC. 605-530년 경 주로 활동)도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도 매우 지혜로왔으며 한 가지 더해 꿈을 깨달아 해석할 수 있었다. (다니엘 1:17)

요셉은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했다. 다니엘도 꿈을 해석할 때 하나님께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도록 세 친구에게 기도부탁을 했다. (다니엘 2:18) 그리고 다니엘은 참으로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다니엘 2:19-23) 그리고 그 해몽은 느부갓네살 이후 나타날 세계의 대제국에 대한 역사(바벨론 - 페르시아 - 헬라 - 로마)를 의미하였다. 

요셉의 말처럼 참으로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창세기 40:8)
창세기 40:16-19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의 해석은 그에게 너무 잔인한 결말이 아니었는가? 요셉이 그대로 해석해주는 것을 통해 요셉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요셉은 떡 꿉는 관원장이 참수되고 장대에 찔려 매달릴 것(impaled on the pole)을 말하였다. 그리고 그의 시체는 새들이 쪼아먹을 것이라고 하였다. 

참으로 그 사람 면전에 대고 말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그러나 요셉은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사실과 진리를 왜곡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비록 어렸을 때도 좀 더 지혜롭게 말했을 수도 있겠으나 형들과 부모님께 자기가 꾼 꿈 그대로 말하였다. 그 내용이 그들이 들었을 때 기분 나쁠 수 있겠다는 것은 요셉도 17세의 나이에 똑똑한 사람으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진리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 그것이 요셉의 장점이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이었다. 느부갓네살 왕이 짐승처럼 되어 몇 년을 지낼 것에 대한 해석(다니엘 4:25), 벨사살왕이 곧 폐위되고 다른 나라에 의해 망하게 될 것이라는 해석(다니엘 5:25-28)도 모두 그들의 면전에서 하였다. 

이들은 선지자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진리를 선포할 때 양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것이 그들의 마음을 매우 상하게 할 수 있을지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도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사도행전 4:20)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36)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것은 그들의 잘못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큰 잘못을 행했다.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야를 못박은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진리의 외침으로 그들은 마음이 찔렸고 (사도행전 2:37)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되었고 그것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은 이유이었다.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잠언 27:5)
창세기 41:45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라고 나오는데 온은 무슨 의미인가? 

이집트 남부에 있는 도시로 고센 땅의 경계에 있다. '온'은 콥틱어 발음이고 그리스어로 Heliopolis, City of the Sun (태양의 도시)라는 뜻이다.  
창세기 44:3 '개동시'라는 표현은 무슨 의미인가? 

동이 틀 때라는 의미. 요셉의 형들이 아침에 해가 뜰 때 다시 가나안으로 출발했다. 
창세기 44:16-34 베냐민을 잡아두라는 요셉의 명에 유다가 항변하는 내용을 읽을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그리스도의 예표가 생각이 난다. 신약은 구약에 감추어져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이해해도 되는가?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억지로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신 사건을 이야기하는 듯한 부분으로 이해되며 감동을 받고 있다. 

유다가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44:22 - 그 아이는 아비를 떠나지 못할찌니 떠나면 아비가 죽겠나이다.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생각하게 되고

44:30-34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하지 아니하면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의 흰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주의 종이 내 아비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를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비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하나님, 그리스도, 우리의 관계가 떠오른다.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결탁되었다'는 것은 (31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신다는 것으로 

'내가 주의 종 아비에게로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하지 아니하면' 

여기서는 '나는 그리스도로, 아비는 하나님 아버지께, 아이는 우리'로 이해되면서  

'유다의 자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내가)께서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않으면'으로  

32절에서 주의 종이 내 아비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를 지리이다

이 부분도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때 하나님께 우리를 데리고 돌아오시겠다'는 의도로 

33절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이 부분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셔서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를 살려주시는 것을 예표하는 그러한 표현으로 생각이 된다. 

34절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비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이 부분은 그리스도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이 된다. 

이렇게 생각해도 맞는지 검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러 이러한 상황이라고 의도하지 않고 읽을 때에도 자연스럽게 이렇게 이해되며 오랫동안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감동이 되고 있다. 

모든 사건을 비유와 예표로 해석하는 것은 주의해야 하나 구약에서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을 말씀하시는 부분이 많이 있다. (누가복음 24:27, 요한복음 5:39-40) 성경을 통해서 또 대부분이 동의하는 구약의 몇 사건들이 있다.  

예를 들면 창세기 22:16-18절의 네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는 것이 결국 네 씨 곧 후손, 예수 그리스도임을 갈라디아서 3:16절에 언급하고 있다. 

구약의 희생 제물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사를 예표하는 것은 복음서와 히브리서 등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위 본몬의 내용과 관련하여 요셉이 형들에 의해 팔리는 부분에서 은화 20개에 팔리는 부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다의 배반으로 은 30에 팔리는 것을 상기하는 것은 많은 성경 주석가들이 이야기하는 바다. 

또한 유다의 자손으로 오실 그리스도(창 49:10, 히브리서 7:14)를 생각할 때 위 요셉에게 유다가 하는 말은 큰 감동을 자아내는 말로 그리스도를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Application (적용)

 
요셉은 말씀이 단련하기까지 고난에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이다. 그가 후에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17년간의 고난의 기간을 어떠한 태도로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형통했다고 성경은 표현한다. 반대로 말하면 그는 하나님과 부지런히 동행한 사람이었다는 의미이다. 

 

한 사람의 내면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련으로 단련된다. 마음은 우리의 어떠함을 보여준다. 그의 믿음과 확신과 말은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보여주게 된다. 

 

요셉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가 얼마나 고난의 기간에 훈련되었는지를 볼 수 있다. 

 

나는 얼마나 훈련되고 있는가? 

 

말씀이 나를 얼마나 단련하고 있는가?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만큼 훈련되어진다. 

 

말씀이 나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나의 인격은 변화된다. 

 

하나님과 긴밀히 연합된 삶이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표현은 요셉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다는 의미이다. 

 

고난의 순간에 어떻게 자신의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요셉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약속을 믿었다. 

 

기도의 삶이다.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교훈,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확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교훈대로 살고자 하는 열망으로 매일 기도하는 삶이다. 

 

배우는 삶이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루실 일에 대한 기대로 

 

매일 매일 배우는 삶이다. 

 

매일 매일 하나님과 긴밀히 보조를 맞추며 나아가는 삶이다. 

 

사랑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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